《 반쪽 발자국 》 2024.10.31. - 11.4                                                                                                                                            
                                                                                                                                                                                           
글 김정인


 내딛고 남은 자리가 온전치 않다. 내가 저기에서 왔던가, 이쪽을 돌았던가? 겅충 뛰어왔던가, 정말 앙감질로 왔던가? 성하지 않은 발자국은 걸어온 길을 모호하게 만든다. 희미한 반쪽 발자국은 그때는 내켜 걸었던 방향도, 태도도, 방식도 지금 은 흐려졌음을 지시할 뿐이다. 잃어버린 발자국을 그리워하는 인간에게 겨우 남은 반쪽 발자국은, 자신이 미흡한 생명인데다 늘 잃어(/잊어)버리는 것이 있으며 혼자이고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확인해주는 징표가 된다. 언젠가 지나왔으나 어느 순간 어느 정도 사라진‘반쪽 발자국'은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에 대한 비유이다.《반쪽 발자국》에서 권나영, 김수현, 주민정, 최민지는 이 비유를 에둘러 걸어간다. 불완전한 인간의 기억, 인식, 심리, 관계에 관한 이들의 회화는 그 자체로‘반쪽 발자국'이 되기 를 자처한다. 이들의‘반쪽 발자국'은 사라진 반쪽 발자국과 남은 반쪽 발자국 사이에서 고정되지 않은 채 그 의미가 진동한다.

 불완전한 기억 주체의 회화는 인상, 기억 흔적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차이로 재구성된 것이다. 기억-회화와 현실 사이 에는 틈이 생기고 권나영의 회화는 기꺼이 세계보다 조각난 꿈과 닮아간다. 인간의 인식 작용에 관한 김수현의 회화에는 불확 실성과 가능성이 중첩된 이미지가 놓이고, 그 회화는 인지 내용과 실제 세계를 짧은 보폭으로 오간다. 실체를 모른 채 잃어(/ 잊어)버린, 그래서 내내 찾고 있는 그 대상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그린 주민정의 풍경 주위에는 고독과 공허가 배회한다. 한 편, 모든 것을 가물가물해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세계에서 선명한 서로를 위한 최민지의 회화는 다른쪽 발자국과의 조우를 기 다리는 듯하다.《반쪽 발자국》에서 네 명의 작가는 회화 작업과 회화에서 확장된 오브제 작업을 선보인다.

 권나영이 캔버스와 종이에 소환하는 형상은 기억에 관한다. 바람, 빛, 소리 등의 현상과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물 들에 주목하는 권나영은 일상에서 장면을 수집한 후 변형을 가해 회화로 재구성한다. 기억과 회화가 층, 켜, 겹을 갖는 무엇임 을 증명하듯 권나영의 긁어 그린 회화는 그 두께 안에서 여러 층의 관계성을 통해 기억의 속성을 가시화한다. 상황, 시점, 스 케일 등이 어긋난 공간은 회상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왜곡을 드러내면서 풍경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든다. 지지체의 변용에 따른 이질적인 형상과 파편이 공존하는 배치는 기억의 복잡한 시간성, 형상적 연상성과 통한다. 종이를 해체시킨 오브제 작업 에서는 납작했던 지지체가 입체로 변모하여 지면에서 가볍게 떠 있거나 바람에 날려 움직인다. 오브제가 함유한 이미지는 잘 게 해체되어, 문득 떠올라 떠듬떠듬 나타나는 기억처럼 불연속적인 것이 된다.

 김수현의 다채로운 화면 앞에서 해소되지 않는 의미적 불확신과 의심은 작업 과정에서 비롯되는 화면 구성에 기인한다. <x에 대하여>는 하나의 단어에 대한 세 사람의 연상 단어 두 개, 즉 여섯 개의 단어를 모아 그린 작업으로, 최종적 화면은 원래의 단어와 멀어져 서로 무관해 보이는 요소들의 낯선 조합, 혼란한 나열이 된다. 서로 다른 개인들의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인지와 이해가 개입된 작업 과정은 결과적으로 감각된 이미지들 사이 논리성을 추적하려는 시도를 무색하게 만들며, 의미 생성을 무화 시킨다. 얼핏 무작위적이고 유희적으로 보이는 색채와 형상 주위에 맴도는 독해불가능성은 여러 사람의, 여러 번의 인식 작용이 서로 맞물리지 않고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 완결된 실험 혹은 게임으로서 김수현의 회화는 인간의 인지가 절대적이지도 완전하 지도 않음을 일깨운다. 한편, <Hallucination>은 불완전한 인지를 보충하는 기제로서 환각에 대한 작업이다. 생성형 AI의 패턴 매칭 현상을 빌려와 감각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때 환각으로 정보를 보완하는 인간의 모습을 시사한다.

 주민정의 회화는 고요히 상실의 흔적을 들춘다. 잃어(/잊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살아가다 어느 순간에 문득, 실체도 모르는 그 대상에 대한 그리운 감정만이 밀려올 때에 관한다. 이 실체없는 그리움은 세계에 환상을 더한 향수를 만들고 그것은 정체를 감춘 채 떠올라 일상을 낯설게 만든다. 불투명한 얇은 물감층으로 구축된 주민정의 회화는 노스탤지어의 시간 구조를 견고하게 드러내기보다 그것의 감정적 잔여물만을 느슨하게 내비친다. 빛바랜 유령 같은 색조의 화면에서‘지난 시절' 의 뚜렷한 단서는 찾을 수 없는데, 주민정은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기보다 오히려 현재를 과거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로써 귀환의 종착지가 부재하는 변형된 향수, 실체 없이 증폭된 감정만을 남긴다. 이 심상을 간직한 회화는 따스하면서도 어 딘가 아리송하고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풍경이 된다. 언뜻 따뜻한 얼굴을 하고 다가와서는, 화석화되어 감지조차 못했던 마음 의 응어리를 건드린다.

 최민지는 인간의 본질적 불안함과 유약함에서 기인하는 관계맺기의 욕구에 주목한다.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견디지 못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완전해지고자 하는 욕구를 안고 있다. 이에 작가는 사랑이 인간의 특권이 아니라 인간 한계의 증 거일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내밀한 유대 관계에서의 욕망에 대한 최민지의 관점은 확장되어,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다 수 집단과 일치하고자 하는 인간의 사회적인 욕망에 대한 시각으로 나아간다. 군중과 분리되지 않기를 바라는 나머지 집단의 견 해를 자신의 것으로 오인한 채‘스스로의 견해'라는 생각의 환상 속에 사는 존재인 인간의 모습을, 작가는 일깨운다. <Follow Me> 는 가늘고 얇은 양의 다리가‘나를 따르라'는 각인이 있는 신발을 신은 조형물로,‘양'을 인간의 비유로 사용하는 작가가 나약 한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따르라는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작업이다. <Name Tag>은 개인을 구분짓는 이름이 주는 무게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으로, 집단과 차이를 만드는 그 무게는 아주 가벼운 것으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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